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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rinity in a jam

영화가 시작되면 보통은 멋진 색을 배경으로 하여 입체감이 뛰어나게 보이도록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로고가 산뜻하게, 혹은 인상적인 모습으로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WB의 로고는 푸르죽죽하고 배경이 되는 구름은 지저분하게 시커멓다. 이것엔 이유가 있으니 바로 모피어스가 나중에 네오에게 설명해 줄 지구의 상황과 같을 것이다. Village Roadshow의 로고가 등장하는 모습도 묘하다.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것들이 모여서 면을 이루고 그것들이 모여서 로고를 이룬다. 마치 금속면처럼 미끈하게 보이는 로고이지만 돋보기로 자세히 보면 스폰지처럼 생겼다고 폭로하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매트릭스 코드의 세례를 받는다. 빗방울처럼 떨어지는 코드가 내리고 난 후에 남은 글자. THE MATRIX. 아. 이것이 이 영화의 제목이로구나. 비가 내리는 듯한 이 모습은 매트릭스하면 누구나 생각나게 하는 유명한 모습이다. 주지하듯이 원조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이다. 공각기동대에서는 문자들이 좌우로 움직였다면 매트릭스에서는 반짝이면서 밑으로만 움직인다는 점이 다르다고 하겠다. 공각기동대에선 효과음이 꽤 마음에 들었는데 매트릭스에선 그렇지 않다. 하지만 밑으로만 떨어지는 코드에 지극히 단순한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써, 단순히 멋지게 글자를 보여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클라이막스를 전달하는 데에도 한몫을 하게 된다. 음악이 들린다. 영화는 시작되었다. Don Davis가 작곡한 이 음악은 영화의 메인 테마이며 이름은 Main Title/Trinity Infinity이다. 우리 말로 하자면 영원하신 삼위일체라는 뜻이 되겠다.

커서가 깜박이다가 검은 바탕에 몇 마디 글자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컴퓨터 모니터임을 알 수 있다. 전화연결음이 들리다가 전화가 연결되자 Call trans opt: received 2-19-98 13:24:18 REC:Log> 라고 나타난다. 이게 무엇일까? 전화를 통해 사이퍼와 트리니티가 대화를 시작하자 이번엔 Trace program running 이라고 나오고 아래 쪽을 가득 채운 숫자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전화추적 프로그램인 것이다. 추적 당하는 두 사람의 통화에서 뭔지 모르지만 사이퍼와 트리니티의 의견이 그다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두 사람은 아직은 누군지 알 수 없는 그에 대해서 말한다. 사이퍼는 트리니티가 그를 좋아하지 않느냐고 떠보는데 트리니티는 한 마디로 잘라 버린다. 사이퍼는 그가 죽고 말 것이라고 하지만 트리니티는 모피어스가 그가 맞다고 믿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이퍼의 말은 자막만 보아서는 오해할 수도 있는데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면 나중에 Dealing for bliss나 There is no spoon 등에서 삭제된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이퍼는 집요하게 묻지만 트리니티는 자기 생각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동안 추적 프로그램은 전화번호를 거의 다 찾아 나가고 있다. 이 때 들리는 작은 소리를 듣고 트리니티는 도청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지만 사이퍼는 그럴 리가 없다고 잡아 뗀다. 사이퍼의 배신은 처음부터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트리니티는 서둘러 전화를 끊지만 그 순간 추적 프로그램은 가운데 0을 끝으로 전화번호를 다 찾았다. (312) 555 0690 여기서 312는 Wachowski 형제의 고향인 미국 시카고의 지역번호이다. 나는 일전에 야후 엘로우 페이지에서 이 번호를 찾아 보았는데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번호인 것으로 나왔다. 그래도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요즘 들어 국제전화요금이 매우 저렴해졌으니 부담없이 한번쯤 걸어 보아도 좋겠다. 그래서 혹시 누가 받거든 나한테도 알려주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찾은 숫자 0의 한가운데로 시점이 파고 들어간다. 숫자 0의 모양을 이루는 둥근 픽셀들은 커다란 코일에 흐르는 전기가 내는 빛을 내는 원처럼 변하고 다른 숫자들도 제각각의 모양으로 변한다. 우리는 그 속으로 들어간다. 모니터에 현미경을 대고 보면 이렇게 보일까? 컴퓨터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숫자 0의 가운데, 아무 것도 없는 어둠 속에서 작은 빛이 나타나더니 화면을 가득 채우고는 이내 경관의 손전등으로 변모한다. 우리가 관찰하는 파생실재적 계界 속으로 들어간 것이고 또 우리가 있던 계界와 우리가 창조해 낸 파생실재의 계界를 구분할 수 없음의 표현이다.

이렇게 그림과 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는 것이 매트릭스가 가진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루이스 캐롤이 지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두번째 작품인 거울나라의 앨리스 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에서도 공통적인 것이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그런 특징이 확실히 보인다. 체스판을 무대로 펼쳐지는 앨리스의 모험에서 한 칸 한 칸 넘어설 때마다 이전의 곳과 새로운 곳이 단절된 느낌 없이 연속되는 느낌을 준다. 그런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는 장면은 '5장 양털과 물'에서 하얀 여왕이 양으로 변하면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하얀 여왕의 목소리가 점점 양의 목소리를 닮아가면서 어느 순간 양으로 변하고 앨리스의 시야에 나타타는 물체는 몰핑 Morphing 되듯이 모습을 바꾼다. 단지 이 부분에만 특징적인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이야기 전체에 걸쳐 계속된다. Wachowski 형제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거울 나라의 앨리스와도 공통되는 점이라 하겠다.

경관의 손전등 빛의 초점에서 벗어나면 모두 4명의 경관이 총을 겨누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리니티라는 초강력 범죄자를 체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잠시 후에 나오겠지만 그 폐허가 다 된 장소는 Heart O' the City Hotel이다. 살금살금 접근하여 그들이 도착한 곳은 303호실. 303이란 숫자의 의미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다. Trinity니까 3이란 의미로 303호실이라는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무난한 생각이기는하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곳 303호실이 시작되는 곳이며 동시에 끝나는 곳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부분 Trinity in a jam에 영화 전체의 줄거리가 극도로 요약되어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돌입준비를 마친 경관들은 단숨에 문을 부수고 돌입에 성공한다. 이것이 바로 PC게임 레인보우식스나 SWAT3에서 볼 수 있는 Breach and clear라고 하겠다. 어두운 방안에는 검은 가죽 옷을 입은 여자 한 명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그가 바로 트리니티이다. 우리말에는 명사, 대명사의 성별 구분이 없다. 현대에 유행하듯 영어의 모양을 따라서 그녀라는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경찰은 손을 들라고 소리지르고 트리니티는 천천히 손을 든다.

Heart O' the City Hotel 밖. 경위가 대원들이 체포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 요원들이 도착했다. 자동차 번호는 70858. 자동차의 모양부터 요원의 차라고 말하는 듯하고 근엄한 정장을 입고 잔뜩 목에 힘이 들어간 거만함에, 경위는 보자마자 치를 떤다. 스미스 요원은 테러범이 너무 위험하니 경찰도 함부로 진입하지 말라고 지시했는데 어긴 것을 탓하지만 경위는 범인을 체포하는 것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더구나 여자 한 명 체포하는 일인데 무엇이 위험하냐고 콧방귀를 뀐다.
경위: 두 명을 보냈으니 곧 잡아 올 거요.
Lieutenant: I sent two units. They're bringing her down now.
이 번역은 분명히 잘못되었다. 분명히 네 명이라는 것을 우리 눈으로 보았다. 오류의 원인은 Unit이란 단어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의 경찰은 Buddy system이 일반적이어서 2인 1조를 이룬다. 이것이 Unit이다. Two unit이라고 말했으므로 네 명이 되어야 옳다. 사소한 오류니까 넘어가자. 경위에게 스미스 요원이 말한다. 당신 부하들은 벌써 죽었소.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Q : 요원들과 관련하여 역시 많은 분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점입니다. 초반부의 트리니티가 있던 303호 방으로 경찰들이 잠입하는 장면에서 왜 요원들이 경찰들의 몸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요?
말틴 : 그 해답은 스미스 요원의 대사 속에 있습니다. “당신 부하들은 이미 죽었소! Your men are already dead!" 그의 말대로 요원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303호 방으로 투입된 경찰들이 트리니티에게 당한 후였습니다. 영화는 극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시간의 순서를 무시하고 이 두 장면으로 교차 편집하여 보여준 것뿐이지요. (nKINO 스페셜 <매트릭스>에 대해 알고 싶은 두 세가지 것들 ②, 2002/05/03 김정대(영화 칼럼니스트) Thx1138@hitel.net)』

303호실에선 트리니티가 머리에 손을 대고 경관의 체포에 응할 자세를 하고 있다. 이 때 보이는 배우 캐리 앤 모스의 빼어난 몸매에 본인 역시 대단한 감동을 받았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정말 감동적인 몸매가 아닐 수 없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같은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경관 하나가 수갑을 꺼내어 다가간다. 트리니티의 얼굴과 팔 사이로 경관이 다가오는 장면은 짧지만 대단히 강렬하다. 타이밍을 재면서 반격의 기회를 노리는 것이 느껴진다. 트리니티가 천천히 눈을 크게 뜨면서 긴장감이 폭발하듯 번개처럼 반격한다. 우선 왼쪽으로 돌면서 수갑을 채우려던 경관의 오른손을 잡아 채고 팔꿈치를 밑에서부터 가격하여 꺽고, 다시 머리에 장으로 일격을 가한다. 일순간 억! 하고 있는 경관 앞에서 뛰어 오른다. 여기서 우리는 이 영화가 만들어낸 위대한 특수효과를 처음 보게 된다. 정지한 순간을 180도 회전하여 보면서 Wachowski형제가 의도했던 바인, 만화책처럼 시간이 정지된 듯하면서도 긴장감이 속도를 더하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기분각으로 앞의 경관을 차서 날아가니 뒤에 서 있던 한 사람은 덩달아 KO. 세번째 경관이 총을 쏘려고 할 때 의자를 차서 머리를 맞춰 잠시 시간을 벌고. 네번째 경관이 제대로 조준하고 총을 쏘니 벽을 타고 한바퀴 넘어가서 피하고 정면으로 들어와 잽싸게 경관을 붙잡고 한 바퀴를 돌려서 경관이 총을 든 손을 붙잡아 그동안 다시 제정신을 차린 세번째 경관을 쏘아 버리고. 붙잡은 경관을 뿌리치고는 어깨 너머로 높이 차서 KO. 모두 처치했다. 트리니티는 대단한 무공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리고 트리니티가 하는 말. Shit! 이 점 또한 매트릭스의 특징인데 여느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Fuck이 전혀 없고 오로지 Shit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이 특수효과는 앞으로도 많이 나오겠지만 매트릭스가 만들어낸 혁신적인 개발품이다. Wachowski형제는 미국에서 Anime라고 불리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단히 좋아하여 그 특징을 영화에 표현하려고 이런 특수효과를 만들어 냈다. Bullet-time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시간과 공간의 Juxtaposition이다. 번역하기 곤란한데 사실 만화를 흔히 보는 우리에게 대단히 익숙한 것이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진검승부의 순간에서도 얼굴 표정이 변화하는 것을 보여준다거나 하는 것. 공각기동대에서 쿠사나기가 산켄화에게 필살의 돌려차기를 하는 장면처럼, 시간이 정지한 듯한 모습이 주는 강렬한 인상을 우리에게 준다. 여기서 처음 나온 불릿-타임은 앞으로도 중요한 장면에서 다시 나올 것이다.

이제 요원들이 나설 차례다. 먼저 투입된 경관이 모두 당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요원은 경찰관을 더 데리고 호텔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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