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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The Real World

Morpheus: You wanted to know what the Matrix is, Neo?
모피어스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간다. 네오가 지금까지 그토록 원하던 것. 바로 매트릭스의 진실을 볼 차례이다. 네오는 트리니티에 이끌려 자리에 앉는다. 아직도 어리둥절한 채로.
Morpheus: Try to relax. This will feel a little weird.
그렇게 말하니 더 두렵다. 충치를 치료하기 전에 아프지 않을 거라는 치과의사의 말처럼 말이다. 모피어스가 뒤통수에 난 구멍으로 바늘을 꽂자 네오는 격렬한 고통을 느낀다. 이때 도저가 LOAD 버튼을 누르자 네오는 컨스트럭트 안으로 들어갔다. 상하좌우전후를 알 수 없는 순백색 공간. 네오는 의자를 만지면서 이것이 진짜가 아닌지 묻는데 그 의자는 바로 먼저 알약을 선택할 때에 두 사람이 앉았던 바로 그 의자이다. 생각나는가? Deja Vu. 매트릭스는 재활용을 많이 한다는 점을 명심하라. 모피어스는 우리가 지각하는 진짜란 두뇌가 해석하는 전기신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Morpheus: What is real. How do you define real? If you're talking about what you can feel, what you can smell, what you can taste and see, then real is simply electrical signals interpreted by your brain.
우리는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진실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만약 감각 자체가 잘못되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모피어스가 지적한 핵심은 바로 그것이다. 심리학의 인지론편에서 우리는 인체의 감각기관이 얼마나 많은 오점을 가지고 있는지 배울 수 있다. 매트릭스가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는 것이 반드시 진실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매트릭스는 인식론적 감옥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각을 지배함으로써 가짜를 진짜로 만들어 버린 매트릭스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감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편이 감각인데 어떻게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첫 단계로 직시해야 할 것은 감각은 감각일 뿐 반드시 사실 그 자체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불교적이다. 일체유심조라고 했듯이 말이다. 역사상 이름난 고승이 한기와 열기를 무시해버린 기적을 행한 사건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서양철학에서 데카르트가 감각의 부정확성에서 출발하여 오로지 이성에 의해 자아를 인식한다는 뜻으로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와도 같다. 이것을 정치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조지 오웰의 1984년은 말할 것도 없이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의 각종 정보는 판단의 근거를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류로 빠지게도 만든다. 매스미디어가 주입하는 정보를 가지고 우리는 투표를 하고 여론을 형성하지만 근거가 되는 정보가 정확하지 않은 것이라면 우리가 내린 결정의 실수는 실로 크다. 철학에서 이성을 가지고 진위를 가려냈다면 현실에선 비판적 시각이 필요하다. 특히 전쟁과 같이 중요한 사안에 대하여 접하는 정보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어서 우리는 주어지는 정보를 판단할 여지가 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많이 처한다. 이것이 의도적일 때 선전과 선동이라고 부른다. 매트릭스가 각 인간의 감각을 통제했다면 선전과 선동은 대중 집단의 지각을 통제하는 것이라 하겠다. 영화 웩더독Wag The Dog은 시민 대중이 얼마나 쉽게 선동에 휩쓸리는지를 보여준다.

한가지 더. 무엇이 진실이냐에 대해 인식론적인 판단과 함께 진지하게 생각해 줄 필요가 있는 것이 심리철학이다. 인식론이 우리 이성이 지각하는 것이 진실이냐를 논한다면 심리철학은 우리의 정신 혹은 이성이란 무엇이고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느냐를 논하는 학문이다. 정신이란 실체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두뇌의 특정 부분을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두뇌의 작용한 과정이 정신인가, 육체와 정신은 하나인가 별개인가 하는 문제들을 다루는 분야로써, 매트릭스의 인식론적인 철학과 함께 지식을 가진다면 대단히 좋은 일이 되겠다. 바로 이 문제를 다룬 영화로서 공각기동대를 추천한다. 정품 DVD가 좋은 품질과 풍부한 서플먼트를 가지고 있지만 만약 주머니가 가볍다면 해적판도 깔끔한 번역을 가지고 몇 해 동안이나 정품 아닌 정품의 자리에 있어 왔으니만큼 나쁘지는 않겠다.

모피어스는 리모콘으로 TV를 켠다. TV의 뒷면에 이렇게 적혀 있다. Deep Image Radiola Television. 깊이가 있으니 우리가 빠져들고 말것이다. 이제부터 진실에 대한 모피어스의 설명이 이어진다. 네오가 이전까지 현실이라고 믿고 살아왔던 20세기 후반, 바로 이 영화가 개봉한 때의 세계는 신경 상호작용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어진 꿈나라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인가. TV속에 진실의 사막이 펼쳐지면서 모피어스와 네오도 TV와 같은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심문실을 관찰하는 모니터 속으로 들어갔듯이.
Morpheus: Welcome to the Desert of the Real.
깨달음과 충격을 상징하는 번개가 때려주고, 크으. 정말 멋있는 대사이다. 이 말은 바로, 네오가 초이에게 건네 줄 디스크를 숨겨 놓았던 책 시뮬라시옹의 저자인 장 보드리야르가 그의 책 첫 장에서 한 말이다. 지도를 너무나 상세히 만들려는 욕심이 지나친 나머지 지도가 점점 커져서 결국엔 지도가 영토를 모두 덮어 버렸다는 보르헤스의 우화를 들면서,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가 실재를 앞질러 실재는 오히려 폐허가 되어 버린다고 말하고 있고, 모피어스는 네오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현실이 사실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어진 가짜였고 가짜에 인간들이 빠져 있는 동안에 진짜 현실의 세상은 눈으로 보듯이 그야말로 폐허가 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다. 매트릭스는 굳이 말할 것도 없이 영화와 TV로 세상을 만나는 현대인들의 현실감각도 크게 잘못되어 있었음을 지적하는 뜻으로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이 911 테러를 소재로 하여 같은 제목의 글을 써서 그것도 역시 유명해졌다. 모피어스는 AI의 탄생과 기계와 인간의 전쟁을 거쳐 지금의 매트릭스가 어떤 것인지 설명해 준다. AI와 인간의 대결구도는 터미네이터를 생각나게 한다. 이 부분 매트릭스가 과거에 어떻게 생겨났고에 대해서는 내가 여기서 말로 떠들 것이 없다. 영화가 무엇보다 잘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속편들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TV화면에서 나와 컨스트럭트로 나온다. 모피어스가 매트릭스를 한마디로 정의한다. 통제이다. 감각을 통제하고 기억을 통제한다. 그 목적은 인간을 에너지 공급원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모피어스는 건전지를 들어 보인다. Getting the bug out에서 스위치가 네오를 듀라셀 건전지의 속칭인 Copper-top이라고 불렀던 것을 기억하는가. 스위치는 이미 깨어났기 때문에 네오가 건전지라는 현실을 알고 있으므로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지금은 모피어스가 Copper-top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장면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Reflections를 느꼈을 것이다. Wachowski형제가 말한 대로 Worlds within worlds라는 개념을 컨스트럭트에서, TV에서, 이야기로써, Reflections으로써 복합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장면인 것이다.

충격적인 진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사람들은 사고나 질병과 같은 재난을 당하면 가장 먼저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런 일은 있을 리가 없다고 아예 부정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완충기제라고 한다. 하지만 충격의 크기는 엄청난 것이다. 그래서 네오는 멀미를 한다. 모피어스는 이럴 줄 알았을 것이니 미리 멀미약을 먹였어야 하지 않을까. 우황청심원도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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