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The Matrix / 8. Morpheus' proposal
홈으로
The Matrix로
이전으로 / 다음으로

8. Morpheus' proposal

현기증이 나도록 Lafayette 호텔을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비는 퍼붓는다. 건물에 온통 폭포처럼 쏟아 내리고 있다. 번개가 친다. 물에 이어서 번개는 무엇을 예고할까. 번개는 빛이니 섬광처럼 깨달음을 줄 것이다. 네오는 트리니티를 따라 계단을 올라간다. 체스판 무늬의 바닥. 그들은 이 체스판을 또다시 올라가게 될 것이다. 드디어 1313호실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무엇인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문을 여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니 문이란 선택의 기로에 선 망설임과 기대를 동시에 상징한다. 트리니티가 네오에게 충고한다.
Trinity: Let me give you one piece of advice. Be honest. He knows more than you can imagine.
나는 아직 트리니티의 이 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분위기로만 이해할 뿐이다. 왜 솔직하라는 것일까. 여기저기서 들은 옛 신화가 생각난다. 운명을 좌우할 결정적인 질문에 솔직하고 현명하게 대답하여 소원을 이룬 신화의 주인공처럼 네오도 같은 처지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이제부터 닥칠 상황에서 네오를 그가 원하던 진실로 이끌어 줄 것은 솔직함이라는 이야기인 것 같다. 대신에 이정우 교수가 충분히 설명하고 있으니 그것을 들어 보자. 네오가 차 안에서 망설이는 때와 모피어스를 만나기 직전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 그래서 네오는 마침내 모피어스에게 가게 된다. 모피어스의 말처럼 하나의 '물음'에 이끌려. 그것은 의혹과 불안, 기대와 불확실의 순간이다. 그런 순간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트리니티는 말한다. 자신을 믿으라고. 그리고 모피어스를 만나기 직전에 말한다. "정직해야 한다"고. 믿음과 정직. 그것은 절박한 의혹과 불안에 처해 있는 인간에게 요구되는 어떤 순수함이다. 방황하는 마음, 의혹에 휩싸인 마음에 믿음과 정직이라는 순수가 깃들일 때 진실은 보이게 된다. 트리니티는 이 결정적 순간에 처한 네오에게 그런 순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기술과 운명, pp154~155, 이정우 저, 한길사)"

네오는 안으로 들어간다. 정확히 말하면 트리니티가 앞장서 문을 열고 들어가고 네오가 따라 오게 한다. 사소한 것이지만 나는 의미를 둔다. 이 점은 나중에 세 종교의 상생이라는 주제로 다시 말할 것이다. 드디어 모피어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번개가 친다. 모피어스는 돌아서서 네오를 보며 폼나게 한마디 한다. 확실히 모피어스역의 이 배우의 모습이나 의상은 리더에 걸맞는 품위가 있다. 그런데 앞니 사이가 벌어진 것은 솔직히 좀 아쉽지 않을 수 없다. 선글라스도 특이하고 멋지다. 그러나 한국인의 골상에는 이런 선글라스가 불가능하다고 하니 혹시라도 욕심은 버리는 것이 좋겠다. 네오와 모피어스는 악수한다. 네오가 먼저 It's an honor to meet you 라면서 손을 내민다. 하지만 모피어스는 No, the honor is mine 이라고 말한다. 이 대화가 상징하는 것은 지극히 분명하다. 바로 예수와 세례자 요한의 만남을 재현한 것이다. 마태오 복음 3장 14절을 보자.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찾아오자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선생님께서 제게 오십니까?" 라고 말한다. 자신은 '그'가 아니지만 '그'를 찾게 될 사람인 모피어스는, 천국이 다가 왔다고 외치며 주의 길을 미리 준비하는 세례자 요한에 해당한다. 악수하는 장면에서 옥의 티라고 지적되는 재미있는 것이 있다. 네오와 악수할 때 모피어스의 왼손이다. 손을 내미는 뒷모습에선 뒷짐을 지고 있다. 그런데 바로 다음 화면은 악수하는 모습을 앞에서 보는데 이때에는 왼손이 내려져 있다. 악수가 끝나는 순간의 화면은 다시 뒤에서 바라보는 것인데 이때엔 다시 왼손이 뒷짐을 지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우리는 모피어스의 손이 셋이라는 소문의 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앉도록 권한다. 트리니티는 어디론가 가버린다. 네오가 어디에 앉았는지 잘 보자. 빨간색 의자. 이 빨간 의자는 나중에 컨스트럭트 안에서 다시 보게 될 것이다. 탁자 위에는 물이 있다. 이미 말했듯이 물은 매트릭스에서만 나온다. 물론 이 물은 마실 물이다. 모피어스는 네오와 대화한다. 이 대화는 많은 것들을 예고한다.
Morpheus: I imagine that right now you're feeling a bit like Alice, tumbling down the rabbit hole? Hmm?
맞다. 네오는 앨리스처럼 흰토끼를 쫓아 왔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완역본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네오는 그동안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사건을 많이 겪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짐작도 못하고 있다.
Morpheus: You have the look of a man who accepts what he sees because he's expecting to wake up.
한글 자막은 좀 난해하게 나왔지만 이 복잡하고 긴 대사의 뜻은 사실 간단하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이 현실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으면 우리는 어떤 것을 보더라도 침착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영화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보고 듣는 것에 의해 현실과 다름없이 느끼고 반응하지만 영화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충격적이더라도 현실과 똑같이 놀라지는 않는다. 이 말의 뜻은 우리가 여러 개의 감각계를 경험하고 있지만 어느 하나만을 현실로 규정하고 나머지는 아니라고 규정하기 때문에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한다는 뜻이다.
Morpheus: Ironically, this is not far from the truth.
여기서 This란 먼저 말한 To wake up이다. 그래서 곧 깨어난다는 말이다. 그러면 아이러니한 것은 무엇인가. 네오는 지금 깨어 있는 상태이지만 아직 매트릭스로부터 깨어나지 않았다. 깨어 있지만 깨어 있지 못한 상태가 바로 아이러니인 것이다.
Morpheus: Do you believe in fate, Neo?
Neo: No.
Morpheus: Why not?
Neo: Because I don't like the idea that I'm not in control of my life.
한글 자막은 "나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으니까요"라고 나오는데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뉘앙스가 좀 남았다. I don't like... 라는 말은 ... 이 싫다는 말, 즉 그 반대의 것을 원한다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내 영어지식이 맞다면 말이다. 네오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면서 사는 인생을 원한다. 자신이 스스로 중심인 인생.
Morpheus: I know exactly what you mean.
곧 부처가 됨이다. 네오가 여기에 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보통 사람들은 모르는 것, 상상하지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고 평생을 느껴 왔던 의문. 세상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이 느낌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이 미치게 만든다. 석가모니가 남들은 모두 당연한 과정으로 생각하는 생로병사에 대하여 고민을 가졌듯이 네오도 지극히 정상적으로만 보이는 세상을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단서를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매트릭스이다.

그렇다면 매트릭스는 무엇인가. 모피어스의 설명이 이어진다. "매트릭스는 사방에 있어. 바로 이 방에도 있고. 창 밖을 내다봐도 있고. TV안에도 있지. 출근할 때도 느껴지고. 교회에 갈 때도. 세금을 낼 때도. 진실을 못 보도록 눈을 가리는 세계란 말이지." 세금 이야기는 왜 자꾸 나오는 것일까.
letmein says: The phrase "paying taxes" comes up a few times. Why?
WachowskiBros: Because we usually couldn't afford to pay ours. It is an examination of what is and is not certain.
익살스럽고도 적확한 설명이다. 이하 장면에 대해선 이정우 교수의 설명이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낫다.

"모든 것은 매트릭스 안에서 이루어진다. 매트릭스는 세계의 모든 것을 그 안에 담고 있는 메타meta 차원이며, 따라서 그 안의 누구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매트릭스는 진실을 은폐하는 완벽한 장치이다.(기술과 운명, p158, 이정우 저, 한길사)"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담고 있는 시뮬레이션에 대해서 우리는 제한적으로 시각적인 범위에서 완벽하게 세계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거울을 생각할 수 있다. 거울 속 세상은 완벽한 메타 차원이다. 거울만 보아서는 우리가 보고 있는 상이 실물인지 거울 속 영상인지 알 수 없다. 진실을 알려면 거울에서 눈을 돌려 실물을 보아야 한다. 실물과 거울을 비교해 보아야 어느 것이 진짜인지 비로소 알 수 있다. 매트릭스가 은폐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네가 노예란 진실. 너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모든 감각이 마비된 채 감옥에서 태어났지. 네 마음의 감옥."
"사람들은 사물들을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지기도 한다고 믿지만, 그 모든 감각이 가짜인 그런 세계. 그런 감옥은 몸을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마음을 가두는 감옥이다. 움직일 수 없게 만든 신체적 감옥이 아니라, 진짜를 느끼고 인식할 수 없게 만들어진 인식론적 감옥.(위 책의 같은 쪽)"
Morpheus: Unfortunately, no one can be told what the Matrix is. You have to see it for yourself.
역사의 어느 현자도 진리를 수학 공식이나 철학 논문 따위로 확정하여 한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안되기 때문이고 그럴 수도 없기 때문이고 또한 그러지 않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매트릭스는 가짜 인식의 장치이고 따라서 그 안의 누구도 매트릭스를 인식할 수는 없다. 오직 한 가지 방법만이 가능하다. 매트릭스 바깥으로 나가서, 즉 다른 세계로 나가서 자신이 들어 있던 그 세계를 바라 보는 것,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다.(위 책 p159)"

Morpheus: Unfortunately, no one can be told what the Matrix is. You have to see it for yourself.
모피어스는 알약이 든 케이스를 꺼낸다. 묘하게도 그 케이스는 스미스 요원이 버그를 담았던 것과 비슷하게 생겨있다. 이제 네오가 선택을 할 차례이다.

이전으로 / 다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