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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Matters of belief

하늘 높이 솟은 정부 건물 위로 헬리콥터가 날아간다. 하늘에 보이는 헬리콥터와 건물에 비친 헬리콥터. 역시 매트릭스 안을 의미하는 Reflections 되겠다. 무수한 경찰 병력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는 이곳에 모피어스가 잡혀와 있다.

Agent Smith: Have you ever stood and stared at it, marveled at it's beauty, it's genius? Billions of people just living out their lives, oblivious. Did you know that the first Matrix was designed to be a perfect human world. Where none suffered. Where everyone would be happy. It was a disaster. No one would accept the program. Entire crops were lost. Some believed that we lacked the programming language to describe your perfect world. But I believe that as a species, human beings define their reality through misery and suffering. The perfect world was a dream that your primitive cerebrum kept trying to wake up from. Which is why the Matrix was redesigned to this, the peak of your civilization. I say your civilization because as soon as we started thinking for you it really became our civilization which is of course what this is all about. Evolution, Morpheus, evolution. Like the dinosaur. Look out that window. You had your time. The future is our world, Morpheus. The future is our time.

스미스 요원의 독백이자 매트릭스에 대한 찬사는 들어줄 만하다. 중생들은 먹고 살기에 급급한 나머지 살기 위해서 먹는지 먹기 위해서 사는지조차 모를 정도이다. 그의 말을 통해서 지금의 매트릭스가 있기 이전에 또다른 매트릭스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첫번째 매트릭스는 원래 고통이 없는 완벽한 인간 세상이었는데 매트릭스 안의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불완전하고 고통스러운 지금의 매트릭스가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사람들에게 현실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이럴 때 보면 스미스 요원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처럼 보인다. 이것이 생각해 볼 화두이다. 종교에 대해서. 종교는 모두 어떤 이상향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철학도 가끔 그렇고. 이상향이든 유토피아든 무엇이든 그것은 항상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바라고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바라던 그것들로 채워 주었는데도 그 안의 인간들이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내 종교적 경험과 여러가지를 종합해 말하자면 완벽한 불변의 이상향은 오히려 지옥인 것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신이 재림하여 선한 자들을 골라 따로 혜택을 주게 될 나라인 천국은 모든 것이 완벽하고 모든 것이 행복한 세상으로 기대된다. 그래서 그 안에 들고자 모두 '밋슈미다'를 고래고래 외친다. 한가지 생각해 보자. 1980년대 후반인가 외국에서 펄시 콜레라는 목회자가 왔었다. 그는 영적인 통로로 천국에 다녀왔었다고 말하면서 천국의 모습을 묘사했다. 거기엔 슬픔도 고통도 없고 오직 행복만 있다고 한다. 많은 신도들이 이 사람의 강연에 매혹되었었다. 이 고통스러운 현실 세상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가 않다. 모든 사람이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오직 행복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행복에 넘친다는 것이다. 슬픔을 느낄 기회가 아예 없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마약에 취해 황홀감을 느끼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기쁨과 슬픔은 상대적인 것이다.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있을 수 없다. 이것을 이해하면 우리는 '밋슈미다'를 넘어서 그리스도교의 정수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 천국은 어디에 있을까. 옛날엔 분명히 구름으로 덮힌 대기권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다면 새들이나 파리나 모기가 사람보다 먼저 천국으로 갈 것이다. 우주를 여행하게 되면서부터 우리가 볼 수 있는 범위는 극히 작은 범위이지만 우주 어디에도 그런 특정한 장소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신은 거짓말을 했는가. 신이 말한 이상향의 모습이 무슨 의미였는지 제대로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그리스도교는 비로소 당신에게 내밀한 신비를 열어 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교리 수업이 아니므로 그런 이야기를 깊이 할 필요는 없겠다. 중요한 건 선한 사람들과 유익한 것들로 가득찬 세상은 절대 천국이 아니라 오히려 지옥이라는 사실이다. 누구인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말했었다. 만약 성인들로 가득 찬 세상이 천국이라면 차라리 지옥에 가겠다고. 한국 전통의 어쩌구를 외치면서 우후죽순하는 정신수련 단체들이 주장하는 도교적인 이상향인 선계仙界도 마찬가지이다. 선량하고 도통한 신선들끼리 모여서 불로장생하는 동안 할 일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죽지도 않으니 바둑이나 두면서 심심함을 달래는 것? 오히려 그리스도는 불완전하고 불행한 세상으로 스스로 내려왔다. 인간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며 함께 눈물 흘렸다. 어디가 천국인가는 사실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불가에서는 어떠한가.불교에서도 분명히 피안이라는 이상향이 존재한다. 그러나 많은 보살과 거사居士들은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는 얻을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스스로 속세에 남아 육신의 생명을 바친다. 왜 모든 것이 완벽했던 첫번째 매트릭스가 실패했는지를 이야기하다가 너무 많이 온 것 같지만, 이상향을 우주 공간에서든 또는 관념적으로든 어떤 완벽하고 고정된 모습으로 찾으려는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각 종교의 껍데기가 아닌 정수를 파고 들기를 여러분에게 요구한 것이다. 위에 말한 내용은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같은 이야기를 보다 쉽고 또 무진장 재미있게 해 주는 영화가 있으니 그걸 보는 것은 보편타당하게 권장할 수 있을 것이다. 플레전트빌Pleasantville이다. 이 영화를 함께 본다면 완벽한 세상이 왜 비극이라는 소리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주제에 있어 매트릭스와 상통하는 면도 있고 또 영화도 아주 재미있다. 그러니 위의 장광설은 잊어버리고 이 영화를 보기 바란다.

고문 도구인지 치과 도구인지 모를 이상한 것들이 나오기는 하는데 사용은 안하는 걸 보니 그냥 겁만 주기 위해서 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빛나는 금속성의 질감이 그것들이 누구의 것인지 말해 준다. 존스 요원이 모피어스에게 주사하는 약도 금속성의 은색으로 빛난다. 이 장면에서 나오는 배경음악의 이름은 A virus라고 붙여졌다. 스미스 요원의 독백에서부터 시작하여 다음 챕터의 컨스트럭트 안에서 네오와 트리니티가 총을 준비하는 장면까지 계속된다. 요원들은 곧 사이퍼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 보라. 내가 누누히 말했듯이 사이퍼는 성공해 보았자 별로 얻는 것도 없는 일에 목숨 걸은 것이다. 이제 죽었으니 혼자만 손해 본 것 아닌가 말이다. 파수꾼을 보내기로 결정하는 요원들이 모피어스를 앞에 두고 삼위일체를 이룬 모습과 다음 순간 네브에서 역시 모피어스를 앞에 두고 고민하는 세 사람의 모습이 이어진다. 절묘하지 않은가. 매트릭스에 이런 기막힌 볼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내가 몇 번이나 언급했던가. 바운드부터 Wachowski형제와 같이 작업한 촬영감독인 Bill Pope에게 왜 오스카 상을 주지 않았는지 난 이해할 수가 없다.

네브 안에서 중요한 선택Choice이 벌어진다. 네오에게 오라클이 말한 대로 모피어스는 네오를 위해 자기 목숨을 포기했다. 그런데 사실 오라클은 누가 죽고 살지를 네오가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아직은 선택권을 행사할 수가 있다는 것인데, 문제는 탱크가 모피어스의 플러그를 뽑기 전에 당장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무엇을 위해서 선택하는가 하면 바로 현실의 이상향인 시온을 위해서이다. 사실 이름만 그렇지 이상향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기계가 만든 가상의 이상향과 현실에 존재하는 이상향이 차례로 등장한다. 스미스 요원은 모피어스에게 매트릭스라는 이상향을 위해서 대답을 강요하고 있고 네브 안에선 네오와 트리니티와 탱크가 시온이라는 이상향을 지키기 위해서 궁리를 하고 있다. 시온을 지키려면 모피어스를 죽여야 한다.

Tank: Morpheus, you were more than a leader to us. You were our father.
그렇다. 굳이 삼위일체를 따지자면 모피어스는 성부이고 네오는 성자이고 트리니티는 성령에 해당한다.
Trinity: Neo, Morpheus sacrificed himself so that he could get you out. There's no way that you're going back in.
아직까지는 트리니티의 진심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다음을 보자.
Neo: Morpheus did what he did because he believed I am something I'm not.
네오의 예언은 이루어지고 있다.
Trinity: What?
그러나 트리니티의 예언은 어긋나고 있다.
Neo: I'm not the One, Trinity. The Oracle hit me with that too.
나는 평범해. 나도 놀랐어.
Trinity: No. You have to be.
너만 놀랐니 나는 더 놀랐어. 네오야 난 너를 사랑해. 그러니까 너는 '그'가 되어야 해. 안 그러면 미워할 거야.
Neo: Sorry, I'm not. I'm just another guy.
미워해도 어쩔 수 없어.
Trinity: No, Neo. That's not true. It can't be true.
아니야. 절대 그럴 리가 없어. 왜냐하면. 왜냐하면. 왜냐하면.
Neo: Why?
몰라~잉

트리니티는 대답을 못한다. 사이퍼와 통화에 이어 두번째인 트리니티의 망설임은 굳이 여성적인 이미지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다. 오라클의 예언이 무엇보다 그 이유가 되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좋다. 사랑 이야기가 있어야 재미있으니까. 트리니티는 쥬베이 앞에서 망설이는 카게로와 같다. 각자에게 주어진 예언이 어지럽게 제 갈길을 찾아가면서 생기는 혼란과 네오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오락가락하는 혼란스러운 모습인 것이다. 트리니티는 어떻게 선택을 해야 하는가. 아직 네오가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네오를 믿는다고 말했다가 나중에 아니게 되면 트리니티는 스스로 예언을 포기한 셈이 되어 버린다. 네오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 사랑하니까 진짜일 것 같은 네오를 포기해야 하고 거기다 모피어스까지 포기하게 된다. 그런데 모피어스에게 주어진 예언은 '그'를 찾을 거라는 것이었으니 당장이라도 죽을지 모를 상황에 처한 모피어스가 죽어 버리기라도 하면 예언이 성취되지 못한다. 여러분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세 사람의 예언을 한꺼번에 성취시킬 묘수를 찾으려고 하다가는 머리에 쥐가 날 것이다. 그러니 나누어라. 각자는 각자의 예언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예언이 각자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은 어디까지나 각자의 몫이다. 그렇게 각자의 예언을 나누면 훨씬 생각하기 편해진다. 모피어스는 이미 네오를 믿었고 상황이 그러니 더이상 상관이 없다. 네오는 자기가 '그'가 아니라고 믿고 있으니 모피어스를 구하러 갈 뿐이다. 사실 네오는 모피어스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다면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예언대로 자기가 죽으면 대신 모피어스가 살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감행하는 것이다. Neo: I believe I can bring him back. 그래서 이 말은 당연히 맞는 말이 된다. 다만 트리니티의 예언만이 복잡하다. 모든 예언을 성취시키는 열쇠는 트리니티에게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실 예언은 복잡하지 않다. 그건 예언이 아니라 트리니티 자신의 선택에 달린 문제인 것인 것이다. 트리니티가 선택을 함으로써 예언은 성취되거나 안되거나를 결정짓는다. 앞서 예언이 미래를 단순히 예측하는가 아니면 예언이 사람에게 암시를 주어서 그렇게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했었다. 예언은 부정해도 역설적으로 이루어진다. 네오와 함께 모피어스를 구하러 가겠다는 트리니티의 결정은 어떤 마음에서 나온 것일까. 사랑인가 했더니 아닌가 보다 하는 마음일까. 이 놈이 아니면 나중에 더 좋은 놈이 나타나겠지 하는 마음일까. 처음엔 네오를 말리고 미련을 갖던 트리니티는 모피어스를 구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이젠 단호한 태도로 네오에게 호령한다. 진짜로 모피어스를 구하는 목적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는 건 분명한데 네오에 대한 감정은 어떻게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내숭이랄까. 트리니티의 망설임에 항상 주목할 것을 당부하면서 다음 챕터로 넘어가자. 이 챕터와 다음 챕터는 불가분이다. 아직은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모피어스는 '그'가 아닌 네오를 믿어 버림으로써 예언을 부정한 것이다. 네오는 이제 자신이 '그'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뛰어 들려고 하고 있고, 트리니티도 자신의 예언이 어긋날 수 있는 모험을 하고 있다. 트리니티에게는 아직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걸 명심하자. 경우는 두 가지이다. 네오가 죽고 모피어스만 구하고 탈출하는 경우와 모피어스와 네오 모두 구하는 경우이다. 전자의 경우는 예언은 어긋나고 후자의 경우가 되어야 예언은 트리니티에게도 이루어진다. 트리니티가 뛰어 들면서 속으로 바라는 것은 후자일 것이다. Choices and a cookie에서 말했듯이 예언이 성취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 부분을 보면서 오라클의 예언 말고도 중요하게 되새겨야 할 것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오라클을 만나러 가면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네오에게 모피어스가 해 준 말이다. 기억하는가. Morpheus: Try not to think of it in terms of right and wrong. She is a guide. She can help you to find the path. SF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시간여행이란 소재가 있다. 악당이 미래로 가서 앞으로 생길 일을 모두 알아서는 다시 현재로 돌아와 그걸 이용하여 돈을 번다거나 역사를 뒤집는 일을 벌인다. 근년에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내용의 영화가 만들어졌었다. 그러나 미래의 일을 모두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사건을 자신이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라클은 미래를 예언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오라클이 직접 나서서 앞으로 이러이러한 일이 벌어지게 될 테니까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지키라고 말한다면 오히려 그 예언은 어긋날 수가 있게 되어 버린다. 어떤 사람들은 오라클은 미래를 다 아는데 왜 가만히 자기 아파트에 처박혀 살면서 아무 것도 직접 하지 않는가고 묻는다. 예언자는 거꾸로 자신의 예언에 구속된다. 예언자는 미래를 알지만 그것을 모두 이룰 능력은 예언자 혼자에게 있지 않다. 신이 아닌 이상 예언자 자신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능력 한도에서 예언을 성취하도록 노력할 뿐이다. 예언은 단순한 운명Fate이 아니다. 네오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왜. 자신의 삶은 자기 것이니까. Control을 가진 자가 Choice를 함으로써 Prophecy를 Fate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모피어스는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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