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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Glitch in the matrix

여기서 나오는 음악은 The Hotel Ambush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이름 그대로의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마우스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빨간 옷을 입은 여자의 사진인데 싸인도 되어 있다. 영화엔 나오지 않지만 마우스는 아마도 인간적인 감정에 이끌린 나머지 스스로 요원 훈련 프로그램으로 들어가서 빨간 옷을 입은 여자를 만나 사진에 싸인도 받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나보다. 좋았겠다.

네오 일행이 돌아왔다. 크으. 폼나게 차에서 내리는 모피어스와 트리니티. 누가 뭐라든 이런 것도 매트릭스를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는가. 네오를 향해 사이퍼는 웃어 보인다. 마치 네오가 '그'라고 믿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웃는 것 같다. 하지만 네오는 외면한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사이퍼의 웃음이 기분 나빠서 그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저들의 기대를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내 눈에는.

이제 Glitch가 시작될 때다. 사이퍼의 콧수염이 움직이고 탱크는 매트릭스에서 뭔가 이상한 움직임이 있음을 직감한다. 마우스가 기다리는 1313호실로 돌아가던 네오는 데자부Deja Vu를 보게 된다. 검은 고양이. 왜 하필 검은 고양이인가.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소설로 알려져 있지만 서양에서 검은 고양이에 대한 미신은 뿌리 깊다. 검은 고양이가 앞을 지나가면 불길하다고 한다. Glitch는 삽시간에 탱크가 어찌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매복에 걸린 것이다.
Tank: They cut the hard line, it's a trap. Get out!
탈출구가 발각되었다. 탱크가 핸드폰으로 마우스에게 알려주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따발총을 양손에 들고 쏘아 대지만 경찰 병력의 총에 마우스는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네오 일행도 서두르지만 함정에 빠졌음을 발견할 뿐이다. 병력이 호텔 밑으로부터 들어오고 있고 마우스가 기다리던 곳은 위에 있던 것으로 봐서 그들은 그 사이 어디엔가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사소한 점. 전에 모피어스를 만나러 트리니티를 따라 처음 이 호텔에 왔을 때에는 말하지 않았지만 호텔 바닥면은 체스판 무늬이다. 별로 뒷받침할 것이 없지만 체스는 전쟁이니 이런 상황을 의미한 것 아닐까. 하지만 역시 어설픈 설명이다. Morpheus' proposal에서는 성격이 다르니 일관성이 없고 무엇보다 체스판 무늬는 서양에서 바닥에 너무나 흔하다. 그리고 계단을 위에서 바라보는 화면이 돌아가는 모습을 Impossible pursuit에서 이야기한 히치콕의 현기증과 비슷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긴 한데 현기증에 나온 종탑의 계단은 너무 좁은 것이어서 여기와 같은 시각적인 느낌을 그다지 받지 못했었다.

데자부라는 심리적인 현상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가 있긴 한데 간단히 하겠다. Deja Vu. 기시감이란 실제로는 처음 보는 것인데 본 적이 있다고 느끼는 환각Illusion이다. 반대로 익숙한 일인데 처음이라고 느끼는 현상을 미시감Jamais vu이라고 한다. 사실 이런 설명보다는 비슷한 장면이 계속해서 되풀이된다고 내가 이미 지겹게 말했듯이 매트릭스에 하나 뿐인 것은 없다는 점이 바로 매트릭스 전체에 일관된 데자부라 하겠다. 이 대사는 나중에 다시 나오고 저 장면은 앞에서 먼저 나왔던 것과 똑같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하지 않았던가. 바로 그거다. 영화 자체가 데자부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그토록 지겹게 이야기했던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마우스가 기다리던 곳으로 가보았지만 벽이 막혀 있다. 이것이 변한 것이다. 사이퍼는 금방 체념한다. 그럴 이유가 있으니까. 모피어스가 사이퍼에게 핸드폰을 달라고 하는데 사이퍼는 주머니에 뭔가 들은 척하지만 아무 것도 없다. Down the rabbit hole에서는 모피어스에게 사이퍼가 핸드폰을 주었지만 지금은 못 준다. 왜냐하면 쓰레기통에 버렸으니까. 대신 트리니티가 핸드폰을 준다. 그런데 사이퍼가 핸드폰을 갖지 않은 것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모피어스는 탱크에게 건물 설계도를 찾게 한다. 탱크가 찾은 설계도를 잘 보면 오른쪽 아래에 Eleventh Floor라고 적혀 있다. 이것은 오류로 보인다. 아니면 각 층의 구조가 같기 때문일 수도 있다. 대본을 정확히 보기 전까지 나는 그들이 있는 곳이 8층이냐 11층이냐에 대해 심각히 고민했었는데 모든 것이 영화에서는 정확히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대본을 보면 자세한 것을 알 수 있다. 모피어스 일행은 마우스가 기다리던 1313호실로 올라가는 도중이었다. 그런데 이미 그곳은 마우스가 당했으므로 갈 수 없고 경찰병력이 위와 아래에서 좁혀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중에 8층으로 들어간 것이다. 아마 거기서 비상계단을 타고 탈출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그러나 거기도 역시 전체가 막혀 버렸다. 그래서 탱크에게 설계도를 찾게 하여 수도관으로 향하는 길을 찾는데 탱크가 왼쪽으로 가라고 말하는 방은 808호실이다. 그곳 화장실 벽을 뚫고 수도관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스미스 요원이 8층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모피어스가 전화를 끊는 소리를 정확히 포착한 결과이다. 그러나 발견한 것은 모피어스의 자켓 뿐이다. 일설에는 자켓이 트리니티의 것이라고도 하고 그럴 가능성도 있으나 대본상으로는 일단 그렇다. 수도관을 따라 내려가다가 사이퍼가 재채기 하는 바람에 수색하던 경찰에게 발각되는 곳은 6층 608호실의 수도관 벽이라고 한다.

여기서 에이팍의 유일하고 결정적인 대사가 나온다. 에이팍이 에이팍Apoc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대사이다. Apoc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Apocalypse 또는 Apocrypha와 같다. Apocalypse는 묵시 또는 계시와 동의어이다. 즉 에이팍은 계시이다. 예언은 오라클이 하는데 에이팍이 무슨 계시를 또 하는가. 바로 네오에게 권총을 주면서 읊는 이 대사. Apoc: Neo. I hope the Oracle gave you some good news. 이것이 바로 에이팍이 행할 유일한 계시이고 유일한 역할이다. Good news란 글자 그대로 복음이니 구세주가 올 것이라는 예언인 것이다. 바로 이 장면을 위해 에이팍이라는 이름이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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