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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Follow instructions

요원이 네오의 행적을 검색하고 있는 사이, Searching은 네오의 컴퓨터에서도 행해지고 있다. Jen's Matrix에서 찾은 바에 따르면 화면에 나타나는 내용은 이렇다. 네오의 "Global Search"가 검색하고 있는 것은 The Courier Press (Volume 32 No.69)이고 헤드라인은 "Morpheus International Manhunt Underway"이며 옆에는 스포츠 안내 박스 기사가 있다. 또 하나 등장하는 기사는 "Morpheus eludes police at Heathrow Airport"라는 것이다. 네오는 헤드폰을 끼고서 음악을 들으며 잠들어 있다. 헤드폰의 상표가 보인다. Panasonic. 작은 소리로 듣고 있는 음악이 들린다. 이것은 Massive Attack의 Mezzanine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Dissolved girl이다. 아주 작게 들리지만 다음 순간 트리니티의 메시지가 등장하는 장면을 생각하면 뭔가를 암시하는 듯한 가사를 가지고 있다. 방안을 내려다 본 모습도 보이는데 네오의 인물이나 성격을 표현하는 뜻이 있는 것 같지만 하루 종일 컴퓨터에 매달려 사는 사람의 어수선한 방안이라는 것 밖에는 잘 모르겠다. 한 쪽에 커피 잔으로 보이는 것이 있다. 갑자기 화면이 Blank되고 메시지가 나타난다.
SCREEN: Wake up, Neo...
Wake up이 그저 잠에서 깨어나라는 뜻만은 아니라는 것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똑같은 제목의 음악이 말해 줄 것이다. 사무엘이 밤중에 야훼의 말씀을 듣고 어리둥절하듯(사무엘상) 네오는 눈을 뜨고 컴퓨터에 나타난 이상한 현상에 놀란다. 이게 뭘까. 누군가 컴퓨터에 침입한 것 같다. 이름 날리는 해커인 자신의 컴퓨터에 칩입하다니.
SCREEN: The Matrix has you...
무슨 뜻으로 말을 하는 지도 모르겠다. Ctrl + X를 눌러 정지시키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 Follow the white rabbit. 흰토끼를 쫓으라니. 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도 된다는 말인가. Esc키를 눌러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메시지는 일방적으로 전해진다.
SCREEN: Knock, knock, Neo.
바로 그 말이 실현되기라도 한 것처럼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숫자도 정확하게 두 번. 기이한 현상에 정신이 팔려 있던 네오는 깜짝 놀라고 만다. 찾아온 사람은 초이이다. 화면을 다시 보지만 Blank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방금 보았던 것은 꿈일까 생시일까.

노크 소리에 놀라는 장면은 조지 오웰 George Orwell의 1984년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윈스턴은 텔레스크린이 감시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일기에 대형 Big brother을 타도하자고 쓰다가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사상경찰에 발각된 줄 알고 놀라는 장면이 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도 1984년과의 관계는 계속된다.

찾아온 사람은 초이 Choi이다. 네오는 문을 열고 찾아온 사람을 확인한다. 정열적이면서 또한 어느 정도 불건전한 방식으로 야간유희를 즐기려는 젊은이들이다. 이 때 네오의 방번호 101호실을 볼 수 있다. 뭔지 알 수 없지만 초이는 네오를 찾아올 약속에 2시간이나 늦게 온 것이다. 초이는 늦은 탓을 여자 친구 두주어 Dujour에게 돌린다. 초이는 2천 달러를 건넨다. 돈을 받은 네오는 책 속에 숨겨둔 디스크를 꺼내어 준다. 초이는 환호한다.
Choi: Hallelujah. You're my savior, man. My own personal Jesus Christ.
네오가 경고하자,
Choi: Yeah, I know. This never happened. You don't exist.
무척 창백해 보인다는 말에 네오는 방금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갈 때가 있어? 하고 묻는다.

여기까지 왜 네오가 정신을 차릴 수 없는지 이유를 정리해 보자. 네오의 방 번호인 1984년에서도 나오는 101호실은 잡혀 온 사람으로 하여금 몇 시인지, 낮인지 밤인지, 며칠이 지났는지조차 알 수 없는 곳이다. 고문으로 기억을 잃게 하는 기능도 있는데 그것은 조금 후에 나올 것이다. 또 초이의 여자 친구 두주어의 이름을 보자. Dujour는 프랑스어 이름이다. Du는 영어로 대충 of나 by에 해당하고 Jour는 낮 day이라는 뜻이다. 네오 앞에 두주어가 있다. 지금은 밤인데 네오는 낮 Dujour을 보고 있는 것이다. 조금 전에 있었던 이상한 현상을 겪고 얻은 혼란스러움이 아직도 남은 것이다. 초이가 네오에게 주는 돈은 왜 2천 달러일까. 1천 달러도 아니고 3천 달러도 아니고 말이다.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2천이란 숫자는 예수 탄생 2천년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장면 가운데 하나가 바로 네오가 디스크를 꺼내는 책이다. 바로 매트릭스의 주제를 한마디로 말해주는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 Jean Baudrillard의 저서 Simulacres et Simulation 영어로는 Simulacra & Simulation 중에서 니힐리즘 Nihilism 곧 허무주의에 관한 장인 것이다. 허무주의에 관한 이해는 이 장면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Dew's Matrix Fan Page에 의하면, 니힐리즘의 뜻은 모든 존재가 무의미하며 궁극적인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Tom Morris저 Philosophy For Dummies의 쉬운 설명에 의하면, 니힐리즘에게 인생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간단명료하게 아니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당신의 인생은 무의미하며 내 인생도 무의미하다. 존재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목적이나 계획도 없으며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니힐리즘은 부존재 nonexistence, nothingness를 의미한다. Nihilism은 'Nil'에서 나왔고 이것은 없음, 공, zero, 의미 없음을 의미한다. 초이가 네오에게서 디스크를 사고 나서 하는 대사의 원문을 보자. Choi: This never happened. You don't exist. 말 그대로 네오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매트릭스라는 허상이기 때문이다. 네오가 니힐리즘의 장을 펼쳐 보이는 것은 잘 알려진 바대로 의도된 의미가 있다. 영화의 전체 뜻이 바로 허무주의임을 미리 암시하는 장면인 것이다. 허무주의는 또한 모든 법과 제도를 부정함이다. 네오가 펼치는 책 속에는 원래의 책은 없다. 우리가 실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은 실재가 아니다. 이것이 영화에서 드러나는 대표적인 장면은 네오가 매트릭스의 법칙이, 심지어 중력 같은 것까지도 왜곡되고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도장 격투 장면이다. 같은 예로는 첫부분 트리니티의 점프 장면, 부활한 네오가 총알을 멈추게 하는 장면이 있고 트리니티와 네오가 불법 해킹을 하는 상황도 같은 표현이다. 니힐리즘은 또한 무정부주의, 테러리즘, 폭력혁명을 뜻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의 기원은 19세기 러시아 혁명 당시에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든 사회적 정치적 제도를 폭력행동으로 파괴하자고 주장했던 정치적 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매트릭스도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파괴되어야 할 제도이다. 특히 네오와 트리니티가 무장병력이 지키고 있는 정부건물에서 벌이는 총격전은 혁명적이고 테러리즘적인 니힐리즘 성격의 장면이다. 이것으로 짧게나마 니힐리즘에 대하여 설명했지만 문외한인 나의 설명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한 점이 많을 것이다. 매트릭스를 감상하면서 동시에 이 책도 같이 읽기를 강력히 권한다. Wachowski 형제는 마치 만화책처럼 이 책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네오가 꺼내드는 책은 무척 두껍게 생겼지만 사실은 소설 책 한 권 정도의 두께 밖에 안된다. 국내에선 시뮬라시옹이라는 제목으로 하태환 역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어 있다.

초이가 Hallelujah. You're my savior, man. My own personal Jesus Christ라고 말하는 것은 네오가 앞으로 '그'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말이다. 마약을 하는 초이 같은 이가 어떻게 구세주의 재림을 예언하느냐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은 성서 구절을 내세울 수 있다. 주께서 어린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주를 찬양하게 하시리라고 하신 말씀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고 대답하셨다는 마태오복음 21장 16절의 말씀과 지혜롭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루가복음 10장 21절의 말씀이 있다.

네오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갈 때가 있어?하고 묻는 것에 대해, 매트릭스에 대해 또하나 추천할 만한 해석을 제시해 주는 책인 기술과 운명에서 이정우 교수는 장자의 호접몽과 하이퍼리얼리티까지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그저 자연스러운 대사의 흐름으로 생각한다. 초이는 항상 꿈과 생시가 분간이 되지 않으니 이유는 환각제인 메스칼린 때문이다. Choi: It's the only way to fly. 네오도 나중에 Fly 할 것이다. 이것을 그냥 무책임한 마약중독자가 내뱉은 말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비록 마약이라는 방법이지만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고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중에 네브에서 식사할 때에 마우스가 또다시 일깨워 줄 것이며 다음 대사로 이어지는 맥락을 구성한다.

다음 대화를 보자.
Choi: Hey, it just sounds to me like you need to unplug, man.
무심코 한 말 같지만 그야말로 진실을 꿰뚫고 있지 않은가. 초이는 컴퓨터와 그만 떨어지라는 소리이지만 사실 인간이 모두 매트릭스라는 컴퓨터가 만든 거대한 발전소에 꽂혀 있다는 사실과 놀랍게도 일치한다. 네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컴퓨터 일을 잠시 쉬는 것이 아니라 매트릭스라는 거대한 컴퓨터로부터 정말로 벗어나는 일인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짧은 장면에 엄청나게 중요한 것들이 많이 모여있다.

네오는 두주어의 어깨에 새겨진 흰토끼 문신을 보고 클럽으로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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