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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Choices... and a cookie

네오는 오라클이 있는 부엌으로 간다. 여기서부터 나오는 음악은 Django Reinhardt의 Minor Swing이라는 스윙 재즈곡이다. 그런데 소리가 작아서 잘 들리지 않는다. 이 음악은 조니 뎁과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한 영화 Chocolat의 OST에도 수록되어 있다. 오라클은 확실히 예언자라는 이름과는 걸맞지 않는 모습이다. 아니면 우리가 너무나 전형적인 이미지에 길들여져 있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여러 가지 면에서 매트릭스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허락하지 않고 신나고 재미있게 박살내 준다. 팬으로서 글로리아 포스터가 속편 완성을 마치지 못하고 사망한 것을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지금으로선 Wachowski형제가 빈자리를 어떻게 메울지 기대할 뿐이다.

오라클은 과자를 굽고 있었다. 하지만 예언은 이미 시작되었다.
Oracle: I'd ask you to sit down, but you're not going to anyway. And don't worry about the vase.
Neo: What vase?
Oracle: That vase.
우리도 한번 Bake our noodle 해보자. 예언이란 언제나 흥미로운 소재이다. 예언은 정해진 미래인가 아니면 이루어지는 미래인가. 꽃병에 대한 생각은 재미있는 철학적 토론거리이다. 오라클이 말을 안 했어도 꽃병이 깨졌을까. 예언이 맞은 것을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좋을까. 기준은 어디가 되어야 할까. 예언이 있은 시점에서 미래를 향하여 어떻게 예언이 이루어지는가를 보아야 할까. 아니면 결과가 이루어진 때로부터 과거의 예언을 보아서 그것이 맞을 수 있었던 가능성을 따져 보아야 할까. 그것도 저것도 아니면 우연한 일치에 대한 합리화일까. 하지만 오라클의 예언은 이 정도의 생각을 넘어선다. 한편으로는 이루어지도록 스스로 움직여서 결국엔 정해진 미래처럼 일치된다. 그러므로 예언에 대해 우선 가져야 할 생각은 그것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적인 것이라는 생각이다. 예언은 스스로 움직여 스스로 이룬다. 예언에 팔다리가 달려서 움직인다는 것이 아니라 예언을 받은 사람의 행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예언은 심리적으로 조종하는 최면이나 암시인가. NO. 예언을 거부하는 행동을 통해서도 예언은 성취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의 예언은 말할 것도 없이 바로 우리가 보게 될 것처럼 오라클이 모피어스와 트리니티와 네오에게 준 모든 예언이 부정됨으로써 역설적으로 예언은 성취된다. 그래서 예언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용하다는 아무개를 찾아갈 생각을 갖는다면 말리고 싶다. 예언이 성취된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네오에 대한 예언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이해했을 것이다.

Oracle: You're cuter than I thought. I can see why she likes you.
Neo: Who?
Oracle: Not too bright, though.
네오는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척 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둔해도 그걸 모를까. 그래서 나는 선언하건데 이것은 네오의 내숭이다. 고로 앞으로 성취될 오라클의 예언 중에는 네오의 내숭이 끝나는 것도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소리가 너무 작아서 비디오나 DVD로 볼 때에는 잘 들리지 않지만 다음 순간부터 오라클에게서 진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동안 들리는 음악은 유명한 재즈 음악가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의 I'm beginning to see the light이다. DVD의 3번 오디오 트랙에서 정확히 들을 수 있다. 예언을 받는 순간에 딱 어울리는 제목 아니겠는가.

오라클은 문 상인방 위에 Know Thyself라는 뜻이 새겨진 것을 가리킨다. 즉 여기는 델포이 신전이다. 자신의 운명을 몰라 찾아온 네오는 예언을 받으러 왔고 오라클이 예언을 행할 것이다. 옛날 델포이 신전의 신탁에 대해서 아무도 질문할 수 없다. 예언은 일방적인 것이다. 그러나 오라클은 오히려 네오에게 묻는다. 왜 여기에 왔는지 아느냐고. 물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라고 믿는지 묻는다. 양상은 예언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의 운명을 정해 보라는 식이다. 물론 나중에 예언해 준다. 오라클의 의미에 대해서 불교적인 설명도 있다. 오라클을 보살과 같다는 설명도 들을 만하다. 원래 보살은 깨달은 자라는 뜻으로 석가모니 한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이고 영화와도 연관이 있는 것은 대승불교적인 의미로서, 스스로 깨달음을 여는 능력이 있음에도 열반에 들지 않고서 이 세상에 머물러 일체중생을 먼저 피안에 도달하게 하는 뱃사공과 같은 자이다. 모피어스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오라클과 예언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해 묻는 네오에게 해준 대답에서, 그리고 모피어스를 구출하여 예언이 성취되기 시작했을 때에 다시 설명해 주는 말에서 오라클이 보살과 같은 존재라는 점을 이야기해 준다.

Oracle: I'm going to let you in on a little secret. Being the One is just like being in love. No one can tell you you're in love, you just know it. Through and through. Balls to bones.
오라클: 한 가지 비밀을 알려 주지. '그'라는 존재는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아. 아무도 알 수 없고 자신만이 알아. 온몸으로 아는 거지.
그동안 몇개 부분의 자막에 대해서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다. 번역자보다 아는 것도 없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만족할 수 없지만 불만은 없다. 이것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는가. 오라클이 말하고 있는 것은 체득이다. 지득이 아니다. 체득과 지득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알아보라. 깨달음이란 분명히 온몸과 마음으로 알고 느끼고 행하면서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네오가 '그'가 되면 알게 될 바로 그것이다.그걸 가르쳐 주었으니 이것으로 네오에게 해줄 예언은 다 해주었다. 예언은 이것이다. 나머지는 예언이 성취되도록 노력하는 일 뿐이다.

소나 말 같은 가축을 사고 팔 때에 건강한지 확인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이를 보는 것이다. 도대체 왜 오라클이 네오의 이목구비를 살펴 보는 것일까. 네오를 잡아 먹기라도 할 것인가. 매트릭스 안에서 보이는 육체의 모습이란 디지털화된 이미지일 뿐이지 실제의 육체를 완전히 반영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정신을 반영한 것은 더욱 아닐 터이고. 오라클의 행동은 오로지 네오에게 해야 할 말을 하기 위해 운을 떼려는 목적일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한마디로 아니라고 말해 버리면 재미가 없으니까. 이건 농담이고. 이제부터는 예언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먼저 한 예언을 실행해 가는 과정이다. 그러기 위해서 네오에게 해 줄 말을 해 주어야 하고 네오의 생각이 예언을 성취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뒤이은 말은 모두 그런 과정인 것이다. 네오는 자기가 '그'가 아닌 줄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모피어스와 트리니티에게 해 준 예언들도 성취된다. 다음으로 네오의 부활을 이야기해 준다. 이 말을 예언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오라클은 지나가는 말처럼 흘릴 뿐 전혀 무게를 싣지 않는다. 오라클은 그렇게 될 것을 알지만 예언처럼 말해주면 네오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피어스가 위험할 것도 말해준다. 확실히 일어나는 일이니 예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예언은 중심이 되는 예언을 성취하게 만들기 위한 보조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있는 것임을 잊지 말라. 역시 마찬가지로 네오를 움직여 예언이 성취되도록 하는 것이다. 오라클의 대사를 잠깐 살펴보면.
Oracle: You're going to have to make a choice.
선택하면 생각나는 것. 직장상사 Rhineheart가 선택을 하라고 했었고 모피어스는 알약을 선택하라고 했었다. 이제 하나의 선택이 남았다.
Oracle: In the one hand you'll have Morpheus' life and in the other hand you'll have your own.
한손엔 빨간 알약, 한손엔 파란 알약처럼 말하고 있다.
Oracle: One of you is going to die. Which one will be up to you. I'm sorry, kiddo, I really am. You have a good soul, and I hate giving good people bad news. Oh, don't worry about it. As soon as you step outside that door, you'll start feeling better. You'll remember you don't believe in any of this fate crap. You're in control of your own life, remember?
모피어스를 처음 만났을 때에 네오에게 운명을 믿는지 묻자 네오는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이유는 Neo: Because I don't like the idea that I'm not in control of my life이었다. 위에서 예언의 성취가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 했었다. 오라클도 바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키요코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미래는 한가지 행로로만 나아가지 않아. 우리가 선택하는 미래여야만 해".

오라클은 여섯 개의 쿠키 중에서 하나를 네오에게 준다.
Oracle: Here, take a cookie. I promise, by the time you're done eating it, you'll feel right as rain.
쿠키가 부활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가 영화에서 그다지 부각되지 않은 것이 20세기의 가장 완벽한 영화 가운데 하나인 매트릭스에서 그나마 아쉬운 점이다. Wachowski형제도 조금은 그런 모양이다. 부활의 매커니즘을 이해한 관객이라면 왜 오라클이 네오에게 쿠키를 먹이는지 쿠키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은 모두 잘 알고 있듯이 쿠키의 역할은 서버를 방문한 접속자의 정보를 담고 있다가 나중에 다시 접속하였을 때에 저장된 정보를 다시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오라클이 네오에게 주는 쿠키는 네오가 부활했을 때에 부활한 육체에다 백지상태의 정신이 아닌 네오의 정신을 다시 되살릴 것이다. 오라클은 그 때를 위해서 쿠키를 주는 것이다.

오라클은 기분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네오는 여전히 떨떠름한 채로 모피어스가 기다리고 있는 곳까지 왔다. 아직 쿠키를 다 먹지 않아서 그럴까.
Morpheus: What was said was for you and for you alone.
그렇다. 만약에 모피어스와 트리니티와 네오가 셋이 작당해서 각자가 오라클에게서 받은 예언이 무엇인지 서로 말해 버려서 예언의 전체 구도를 나름대로 판단하려 든다면 처음에 오라클이 예언으로 의도한 것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니까 서로 쿵짝을 맞추면 안된다. 선가에서도 그렇다. 선승은 선사로부터 화두를 받는다. 어떤 화두를 받았는지 남에게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말하면 죽는다는 우스개 같은 소리가 아니라 남에게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이런 식으로 남의 도움을 받아서 무언가 조금은 깨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런 식으로 화두를 참구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화두를 깨치는 일은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자신만의 과업이다. 깨달음을 남이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오로지 스스로 생각하여 뜻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깨달을 수 있다.그런 점에서 오라클의 예언은 세 사람에게 화두와 같아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리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알려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 되겠다.

모피어스와 네오는 곧바로 오라클의 아파트를 떠난다. 태양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은 6시 40분이 조금 넘었다. 이젠 다시 돌아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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