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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Impossible pursuit

네 명의 경관을 때려눕힌 303호실. 트리니티는 핸드폰으로 모피어스에게 전화를 걸어 발각당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한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이 선을 잘랐다고 한다. 선이 있어야만 매트릭스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것인데 모르는 사이에 추적당하는 바람에 선이 잘리는 줄도 모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303호실에 있는 선은 잘렸으니 다른 탈출구를 찾아 나서야 한다. 그런데 밖은 안전할까? 요원들이 있다고 모피어스가 경고해 준다.
Trinity: God-dammit.
왜 빌어먹을 노릇인가 하면, 보통 경관은 아무리 많이 덤벼도 퇴치할 수 있지만 요원은 트리니티가 상대할 수 없는 상대이기 때문이다. 요원은 강력한 힘과 지능으로 무장되어 있어 트리니티를 능가한다. 요원의 놀라운 힘을 곧 보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트리니티도 요원한테서는 도망가는 수 밖에 없다. 모피어스가 Wells와 Lake가의 교차로에 있는 공중전화로 탈출하라고 가르쳐 주지만 중요한 것은 과연 성공할 수 있느냐하는 문제이다. 방법은 한 가지 뿐이다. 요원에게 붙잡히기 전에 공중전화로 최대한 빨리 뛰어가야 한다.

트리니티는 신속히 결정을 내리고 달려 나가기 시작한다. 앗. 그런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경관과 함께 올라온 브라운 요원과 맞닥뜨렸다. 싸워봤자 이길 수 없으니 도망가야 한다. 트리니티는 재빨리 뒤돌아 도망가기 시작한다. 요원과 경관도 본분에 따라(?) 열심히 쫓아간다. 트리니티는 건물 외벽에 있는 비상계단까지 뛰어갔다. 아래를 내다본다. 뛰어 내려서 빨리 탈출하려는 생각일까. 그러나 이미 아래에는 스미스 요원이 버티고 있다.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것이 꽤 인상적이다. 아마 이쪽으로 탈출하려는 것을 미리 알아챘던 것 같다. 뒤에선 요원과 경관들이 쫓아 오는데 내려갈 수 없으니 올라가는 수 밖에는 없다. 트리니티는 비상계단을 뛰어 올라가고 요원과 경관도 뒤쫓아 올라간다. 아래에 있던 스미스 요원은 그걸 보더니 어디론가 고개를 돌린다. 도망칠 방향을 예측하는 것일까.

트리니티는 비상계단으로 올라가 옥상에서 달리기 시작한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가볍게 뛰어넘으면서 빠르게 도망간다. 지나가면서 보이는 GUNS & ammo라고 쓰인 광고판의 총구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다. 전화번호는 555-0161. 혹시 간판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요원과 경관들도 끈질기게 쫓는다. 특히 요원의 능력은 대단하다. 반듯하고 역동적인 단거리 달리기 자세를 취하며 빠른 속도로 트리니티를 뒤쫓는다. 건물 사이도 가뿐하게 뛰어넘는다. 그런데 뒤따르는 경관들은 아무래도 좀 힘에 부친다. 경관 한 명은 건물 사이를 뛰어 넘다가 몸이 무거워서 그런지 제대로 넘지 못하고 옥상에 걸려서 버둥거리다 간신히 올라온다. 트리니티는 게속 달린다. 이번엔 산 모양의 요철이 사람의 키 만한 양철 지붕 위를 오르락 내리락 달린다.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짧은 부분은 유명한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 Vertigo이라는 영화와 꼭 닮았다. 현기증에 대하여 잠깐 소개하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추격장면이 펼쳐진다. 주인공인 형사 스카티는 정복 경관 한 명과 함께 범인을 쫓는다. 범인은 비상계단으로 옥상으로 올라와 건물 사이를 뛰어 넘으면서 도망간다. 현기증에서 범인이 계단을 붙잡고 옥상으로 올라올 때에 계단을 붙잡은 손의 모양까지 매트릭스에서 트리니티가 보이는 모습과 정말로 똑같다. 거기다 건물 사이를 뛰어 넘으면서 추격하는 모양하며 발소리가 시끄럽게 나는 양철 지붕을 오르내리는 것도 같다. 경관 한 명이 뛰어 넘다가 허우적 거리는 것도. 이 부분까지 현기증을 따온 것처럼 닮아 있다. 계속 더 얘기하자면, 스카티는 추격하면서 옥상 사이를 뛰어 넘다가 그만 높은 곳에서 매달려 허우적 거리게 되는데 이 때 극심한 고소공포증과 현기증을 느낀다. 같이 범인을 쫓던 경관이 그를 도와주려다가 그만 떨어져 죽고 말았는데 스카티는 그 일 때문에 죄책감을 느껴 경찰을 그만 두고 고소공포증을 치료하면서 지낸다. 그러다가 옛 친구를 만나는데 그에게서 정신병에 시달리는 그의 부인을 감시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부인이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며 하루종일 시내를 배회하다가 돌아오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등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카티는 부인을 감시하다가 부인의 행동과 모습이 옛날에 비련을 겪다가 자살하였다고 전해지는 어떤 여자와 같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마치 죽은 여자의 영혼이 친구의 부인에게 들어간 것과 같았다. 단서를 잡은 스카티는 혹시라도 이야기에 나오는 여자처럼 자살하지 않도록 가까이에서 에스코트하여 주며 지낸다. 그러는 동안 스카티는 조금씩 부인을 사랑하게 된다. 스카티는 부인이 잘못되지 않을까 조심하지만 그만 방심한 사이, 이야기처럼 부인은 교회의 종탑에서 떨어져 죽고 만다. 스카티는 더욱 상심에 빠지고 몇 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영화는 다시 이어진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본 여인의 모습이 그 부인과 똑같은 것이다. 그 여인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지만 그를 옛날의 부인으로 생각하는 스카티는 여인에게 많은 선물을 하며 지난 날 친구의 부인과 이루지 못했던 사랑을 그 여인을 통해 대신 느끼면서 행복감에 젖는다. 어쨌든 자기 때문에 두 사람이나 죽었다고 극도로 우울해진 스카티에게 활력이 생겼으니 그런대로 괜찮은 일이라 하겠다. 마침내 스카티는 그 여인과 결혼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그 여인이 친구의 부인에게 주었던 것과 똑같은 장신구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 밖에도 의심스러운 점이 많았다. 형사다운 추리와 유도를 통해서 마침내 진실을 알아내었다. 애초에 그가 에스코트했던 부인은 사실은 친구의 부인이 아니었고 지금 만나고 있는 바로 이 여인이었던 것이다. 이 여인이 친구의 부인인 것처럼 행세했던 것이다. 이것은 스카티의 친구가 자신의 부인의 재산을 탐내었던가(?) 하는 이유 때문에 부인을 죽이고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자살로 위장하려고, 부인과 닮은 이 여인을 고용하여 부인이 정신병에 걸려 스카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살한 것처럼 연극을 꾸민 것이었다. 진실을 알게 된 스카티는 자신을 속인 여인과 친구에게 분노했다. 그래서 클라이막스가 나오게 되는데 어찌되었느냐 하는 이야기는 직접 영화를 보고 확인하기를 권한다. 좀 찾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비디오 가게에 있을 것이다. 1958년 작품이지만 지금 보아도 과연 히치콕의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요즘의 어느 스릴러/미스테리 영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굳이 말하자면 현기증에서도 무엇이 진실이냐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영화에서 주인공을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사람이 꾸며낸 완벽에 가까운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원도 엄청난 속도로 달려온다. 경관들은 따라오긴 따라오지만 좀 허우적대는 모습이다. 다시 트리니티와 요원이 평탄한 지붕 위에 이르게 되자 브라운 요원이 총을 뽑고 트리니티를 향해 쏜다. 몇 발을 쏘았지만 간발의 차이로 트리니티는 맞지 않았다. 그야말로 총알을 피할 정도로 빨리 달리고 있다 하겠다. 이어서 나타난 난관은 지금까지처럼 맞붙은 건물 사이를 뛰어 넘는 것이 아니라 넓은 길을 사이에 둔 먼 거리를 뛰어 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정도의 먼 거리를 넘는 묘기를 보여준다면 한 번쯤은 멈칫했다가 심호흡도 하고 뛰어 넘는 모습을 보여 줄 만도 하다. 그러나 요원이 바로 뒤에 쫓아오고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할 만한 영화적 표현을 생각할 사이도 없이 과감하게 생략해 버리고 트리니티는 단숨에 도로를 사이에 둔 옥상까지 점프한다. 앞서 경관 네 명을 해치운 일과 함께 트리니티가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는 놀라운 묘기가 아닐 수 없다. 이 점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어떻게 보면 육상경기 멀리뛰기 선수가 뛰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중국식 무협영화에서 많이 보는 경공으로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점프에 성공하여서는 가볍게 바닥을 구르면서 충격을 흡수하고는 밑으로 내려와 엄폐물 뒤에 숨는다. 요원도 이에 뒤질 수가 있겠는가. 브라운 요원의 점프는 트리니티보다 더 힘이 있다. 구르는 발로 바닥을 부술 듯이 강력하게 점프하여 높이 뛰어오르고 착지할 때에는 조금도 자세가 흐트러짐 없이 내려 앉는다. 이것을 보고 요원의 능력이 트리니티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또 한 번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뒤쫓아 오다가 요원이 점프하는 모습을 경관들이 본 것이다.
Cop: That's impossible.
그렇다. 사람의 능력으로 그런 거리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요원은 매트릭스 안에서 초인적인 능력을 가졌지만 그 능력을 아무 때나 사용해서는 안된다. 이런 일을 자주 보면 사람들은 매트릭스에 대하여 현실감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 자제하던 일이지만 지금 추적하는 대상은 트리니티라는 극도로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게 되더라도 능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요원은 천천히 일어나 다가온다. 은폐물 뒤에 숨은 트리니티는 조심스럽게 그걸 보고 다시 숨는다. 그 작은 동작에서도 바람소리 같은 효과음이 난다. 트리니티의 숨은 거칠어져 있다. 계속 도망만 가다가는 잡히고 말 것이다. 이제는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고민하는 트리니티. 멀리에 불 켜진 창문이 보인다. 마치 이리로 오라는 듯. 하지만 위험하다. 거리는 더 멀고 정확하게 창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트리니티는 결심하고 전력으로 질주한다.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요원은 가만히 있다. 트리니티는 질주한 끝에 점프한다. 이번엔 거의 다이빙에 가깝다. 온몸을 내던져서 목표지점으로 날아간다. 처음에는 손을 폈다가 창문에 다가오자 주먹을 쥐어서 창문을 깨고 들어간다. 실제 다이빙 경기에서도 입수할 때에는 손가락을 펴서 똥침을 넣듯이 뾰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을 수면과 평행으로 내민다고 한다. 그냥 보기에는 물살이 크게 일지 않기 때문에 잘못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입수할 때에 수면에서 손이 받는 충격은 큰 것이어서 합장하듯 손가락을 편다면 부러지기 십상이라고 한다. 트리니티가 주먹을 쥔 것도 같은 원리로 이해할 수 있겠다. 창문으로 들어간 트리니티는 몸을 웅크리고 계단을 굴러서 밑으로 닿자마자 즉시 쌍권총을 꺼내어 혹시라도 요원이 쫓아오지 않을까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화면의 초점은 총구에 맞추어졌다가 서서히 트리니티의 얼굴로 옮겨진다. 머릿결이 흐트러졌지만 긴장감이 더욱 미모를 돋보이게 해준다. 뚫고 들어온 창문 위에 있는 전등이 흔들리고 있다. 이런 긴장감의 표현은 역시 서부영화나 또는 일본풍에 가까운 것 같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트리니티는 분명히 앞구르기로 계단을 굴러 내려왔는데 마지막에 총을 꺼내는 순간에 보면 뒤구르기로 내려온 것과 같은 자세가 되어 있다. 계단을 구르는 동안 옆으로 굴러 방향이 바뀌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멋진 장면이니까 그냥 넘어가자. 요원은 쫓아오지 않았다. 만약을 대비해 총을 겨누고 있지만 이대로 시간을 지체했다가 또다시 잡힌다. 빨리 공중전화로 가서 탈출해야 한다. 트리니티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Trinity: Get up Trinity. Just get up. Get up.
이 비장한 대사를 우리는 나중에 중요한 장면에서 또다시 듣게 될 것이다.

마침내 거리로 나왔다. 모피어스가 정해준 공중전화가 보인다. 들어가기만 하면 되지만 무작정 안심할 수는 없다. 요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셋이나. 역시나 스미스 요원이 육중한 청소트럭을 몰고 나타났다. 하지만 요원은 차를 공중전화로 향해 놓고 기다린다. 요원이 노리는 것은 트리니티가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가 수화기를 들기 전까지 짧은 순간 동안이지만 무방비 상태가 되는 점이다. 벨이 울린다. 이제 누가 더 빠르냐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 요원의 트럭이 굉음을 내면서 질주하고 트리니티도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둘은 거의 동시에 왔다. 트리니티가 수화기를 들었다. 트럭과 부딪히기 전에 탈출할 수 있을까.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보이는 트리니티가 한 손으로 수화기를 들고 한 손으로 부스의 유리창을 짚고 있는 이 모습은 지극히 인상적인 장면으로서 똑같은 장면을 나중에 보게 될 것이다. 트럭은 충돌했다. 공중전화 부스를 뭉개고 건물 벽까지 뚫고 들어갔다. 트리니티는 탈출에 성공했을까. 트럭은 멈추었다가 뒤로 물러난다. 거기서 스미스 요원이 내린다. 실패했건 성공했건 언제 보아도 요언은 폼나게 행동한다. 다가가 확인해 보지만 시체는 없다. 트리니티는 탈출한 것이다. 나머지 요원도 모여들었다. 트리니티를 체포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새로 알아낸 인물, 네오가 이제 수사의 대상이 될 차례이다. 요원들은 이제 네오의 과거 행적을 Searching 할 것이다.

카메라의 눈은 트리니티가 탈출한 수화기의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구멍 속은 아무 것도 없는 어둠이다. 그리곤 시점이 뒤로 물러나듯이 뒤에서부터 모니터의 글자 a를 이루는 픽셀의 불빛이 앞으로 와서 Searching... 을 이룬다. 앞서 본 것과 같이 연속성을 잃지 않는 매트릭스에 특유한 장면전환이다. 요원이 말한 Searching은 네오 컴퓨터에 와서 Searching이 되었다. 앞서 스크린 속으로 들어갔듯이 우리가 관찰하는 파생실재적 계界 속으로 들어간 것이고, 또 우리가 있던 계界와 우리가 창조해 낸 파생실재의 계界를 구분할 수 없음의 표현이다. 내가 만들어 낸 시뮬레이션 속으로 들어가 그것이 나에게 현실이 되어 버린다... 요즘은 흔해진 SF적 상상력이지만 이것의 근저에는 바로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개념이 있다. 이것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후에 나올 스크린에서 심문실로 전환하는 장면이다.

처음 두 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이 대목은 영화 전체의 줄거리를 짧게 요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여기까지를 영화의 서곡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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