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The Matrix / 머리말 - 왜 매트릭스에 열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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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trix (1999)

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았다. 개봉을 전후해서 TV에 소개된 영화의 인상은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만든 엄청난 눈요기 거리로 가득찬 전형적인 헐리우드 오락 영화일 뿐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런 영화에 돈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고 누가 뭐라건 내 관심에서 잊혀져 버렸었다. 그러다가 한 두 해가 지난 뒤. 비디오 대여점에서 영화를 고르다가 볼 만한 영화가 없어서 고민하던 중에 이 영화를 집어 들게 되었다. 그냥 시간을 죽이는 데에는 이런 저급한 영화도 충분할 것이고 가끔은 총알이 빗발치는 영화를 보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정도의 생각에서였다. 그런 내 생각은 영화를 보면서 금새 바뀌어 버렸다. 영화는 다양한 종교의 상징과 철학 개념과 문화 요소를 풍부하게 담고 있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지날 때마다 그것을 보여 주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전통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기묘한 현대적인 옷을 입고 있었지만 아주 선명하게 해야 할 말을 충분히 해 주고 있었다. 많은 것들이 영화 속에 있었다. 사이버 스페이스, 그리스도교, 불교, 도교의 교리, 현대 철학의 극단, 동화적 교훈, 현란한 쿵후, 신화의 지혜, 양자론의 딜레마, 그리고 전에는 좋아하지 않았던 강렬한 음악까지.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이 다양한 요소들이 하나의 주제를 향해 절묘하게 통합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였다.

통합이란 바로 내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이다. 세상의 어떤 종교던 철학이던 과학이던 완전한 체계를 갖추었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의 언어와 개념으로써 세상을 설명함에 있어 한계에 부딪힌다면 교의나 사상이나 개념이 완전하지 못한 것이다. 또는 사람의 이해가 아직 충분하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과연 그런 것이 가능하겠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세상 모든 종교, 철학, 과학이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가 바로 그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목적을 위해 역사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시도한 결과가 지금 우리가 거저 배우는 각종 지식이다. 불행히도 현대에 이를 수록 그런 통합의 노력을 인간 스스로 포기하는 것 같은 현상을 보고 있다. 바로 지식의 전문화와 분화이다. 무조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고 현실적인 필요도 있긴 하다. 그러나 세분화된 전문가가 만들어 낸 과량의 지식을 흡수하는 데에 바쁜 나머지 우리는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져 있다. 일상에서는 진화론과 과학적 유물론이 만들어 낸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일요일이면 창조론과 유신론을 신봉한다고 고백하는데, 그 순간 내면에 생기는 모순을 깨닫지 못하거나 일부러 무시하기까지 한다. 그리고는 이것과 저것은 분야가 다른 것이니까 상충되더라도 상관없는 일이라고 자위한다. 과연 그럴까? 충돌은 전문가들끼리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 정신 속에서 모순을 일으키기 때문에 중요한 일이다. 천문학자가 천문학 계산을 할 때에는 지동설이 최선의 과학이라고 여겨 그에 따르면서도 한편으로는 음양오행의 원리에 입각하여 맥을 짚고 체질을 판단하여 만들어진 한약을 먹는 것처럼, 분열된 정신과 같은 것이다. 철학자나 예술가와 같은 사람들은 그들이 세상을 설명하는 논리나 작품을 만들어 내는 시각에 있어 합리적이거나 또는 독창적인 방법으로써 노력하기 때문에 언제나 통합을 향해 나아가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특화된 전문 분야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관여할 범위에만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나머지 그것이 다른 세상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생각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자기도 세상의 일부라는 사실 조차 망각한 듯이 살아간다. 갈수록 많아지는 전문가들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 지도 알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어느 것도 혼자서 존재하지는 않는다. 언어는 수학에, 법률은 음악에, 미술은 과학에 의존해서 존재한다. 통합이 중요한 이유는 세상과 그 안에 있는 자신이 행하는 일의 위치를 알게 해주고, 어떤 길을 걸어 왔으며,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짐작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날마다 일상의 의무를 다하기에 바쁜 나머지 그걸 잘 잊는다. 미시적인 관점의 범위 안에서 시작하고 끝나는 수많은 일을 처리하느라고 바쁜 나머지 우리의 세상은 질서를 잃고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사실 무질서는 우리의 내면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세상은 내가 뭐라든 모순 없이 그대로 있다. 모순은 내 안에 있으니 내가 스스로 나를 바로 잡아야 한다. 이것이 통합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통합을 이룰 것인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극도로 세분화된 그 많은 학문을 한 인간이 전부 섭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불가엔 수많은 화두가 있지만 선승은 하나를 깨침으로써 모든 것을 함께 깨닫지 않는가. 미안하게도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한 채, 나는 기왕의 종교적 선각자들이 말한 바에 의존하려 한다. 종교가 가장 우위에 있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했던 것처럼 모든 사상을 하나의 중심 언어로 설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그 중심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통합은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개성적인 것이다. 세상에 사는 사람 만큼 많은 통합이 탄생할 수도 있다. 설혹 때로는 다른 것과 충돌할 지라도 결국 서로에게 의존하는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구의 수십억 인간이 그렇게 사는 것처럼 말이다.

매트릭스가 뛰어난 이유는 Wachowski 형제가 이룬 통합에 있다. 진실과 거짓에 대한 종교적, 철학적 개념과 직선적인 그리스도교의 역사관, 순환적인 불교의 역사관을 그들의 독창적인 세계 속에 하나로 엮어 낸 줄거리를 기반으로 하여 각종의 사소한 대중 문화 취향까지도 절묘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이렇게 많은 요소를 모았으면서도 패러디 영화처럼 웃기는 짬뽕이 되지 않은 것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예가 얼마나 더 있겠는가. 매트릭스는 영화라는 대중 문화에 있어 영문학에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견줄 정도의 자리에 있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매트릭스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무엇을 보아야 할까. 감독 형제는 아직도 찾지 못한 많은 숨은 그림이 있으니 더 찾아보라고 말한다. 감독의 의도와 일치하는 정답이랄 것이 있긴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모범 답안을 찾으려고 하는 노력은 자칫하면 자신의 중심을 잃어 버리게 만들 수도 있다. 매트릭스는 감독 형제가 표현한 그들의 통합이다. 영화를 이해한다는 것이 만든 이의 생각에 완전히 일치되어 버리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해몽이 꿈에서 본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해석하듯이, 이해하는 과정은 대상을 내 정신 속에서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다. 정신이라는 작은 우주 안에 뒤죽박죽된 별들의 위치를 정하고 궤도를 계산해 내는 과정이고, 그 중심은 바로 자신이다. 또한 우리 모두가 각자 우주의 중심이 되어 그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고, 각자가 만들어 낸 수많은 우주의 천문학은 객관적인 방법과 주관적인 방법으로 서로 소통된다. 그래서 중심이란 보편적이며 개성적인 동시에 객관적이면서 주관적이다. 양자역학이 발견한 것처럼 관찰자와 관찰하는 대상은 별개의 존재일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매트릭스를 관찰하는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매트릭스를 이해하는 과정이 시작될 때에 우리는 벌써 통합의 중심을 잡기 시작한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것이다. 매트릭스라는 Wachowski 형제의 통합과 당신이 매트릭스를 이해하는 통합이 조화롭게 양립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 매트릭스라는 통합의 소용돌이를 포함하는 내 통합의 소용돌이를 보여줄 테니 이것을 당신이 가진 통합의 소용돌이에 융합시키라. 그리하여 통합을 더욱 굳건히 하고 소용돌이를 증폭시키라. 그런데 왜 매트릭스인가? 안 그래도 세상엔 배워야 할 것이 많고 이미 품고 있는 지식만 해도 통합을 이루기에 벅찬데 말이다. 처음에 말했듯이 매트릭스는 통합이다. 그것도 아주 절묘한 통합의 본보기이다. 영화를 보면서 이미 느꼈을 것이다. 내가 보여주는 것은 내가 가진 통합이다. 부족한 점은 계속 보완할 것이다. 평생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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